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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 즉문즉설 : 안다 병과 모른다 병 샘플


계율이라든지 그렇지 않으면 성인의 가르침이 그건 특정한 사람에게 해당이 되고 저 밖에, 절에 가면 해당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우리의 삶이 보다 자유롭고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과소비를 하면 그것이 심리적으로 불안이 있을 때 과소비 현상이 일어납니다. 심리적으로 뭔가 열등할 때 화를 내거나 이런 게 다 결국 심리적인 부족함 때문에 생기는 거에요.

그거를 우리가 전부 외부로 돌려가 물질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아무리 물질을 개발해도 경제 성장률이 높아도 GDP가 높아도 이게 근본적으로 뿌리가 안 뽑히는 거야.

그래서 인제는 다시 우리가 돌아와서 자기의 내면을 먼저 봐야 된다. 내면에 갖고 있는 이 욕심이란 게 끝이 없기 때문에 이게 일정한 수준에서 절제가 돼야 한다.

코끼리를 봉사가 다리만 만져 보고 어? 코끼리 기둥 같이 생겼더라 이래 갖고 코끼리 어떻게 생겼냐니까 네, 제가 만져 봤는데요. 기둥 같이 생겼습니다. 코끼리 기둥 같이 생겼다는 사람이 더 무지한 사람이에요, 코끼리 난 모르겠다는 사람이 무지한 사람이에요?

네. 코끼리 잘 모르겠는데요 이거는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는 절반의 지혜가 있는 사람이에요. 코끼리? 기둥 같이 생겼습니다. 이거는 자기가 코끼리를 모른다는 사실도 몰라요.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어요. 이거야말로 완전 무지.

우리는 대부분 나름대로 알아요. 자기가. 그 나름대로 아는 게 코끼리 기둥 같이 생겼다는 식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 경험에 의하면 그렇게 보였습니다만 이렇게 나가야 하는데 내가 알아요 이래요.

그 사람 어때요? 이러면 어, 내가 3일 살아 봤는데 그 인간 이렇더라, 이렇게. 그러니까 그 사람은 경험을 안 해본 사람보다 훨씬 몰라요. 아 난 그 사람 잘 모르겠어요. 이건 굉장히 반 지혜가 있는 사람이야.

아 그건 내가 잘 모르겠다. 모르겠으니까 남의 말을 경청하죠. 그래서 아는 쪽으로 가게 돼. 그 사람? 그거 내가 알지. 내가 3일 살아 봤잖아. 이건 완전 깜깜절벽이야. 우리가 지금 그렇게 무지하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렇게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어.

그래서 자기가 아는 것을 움켜 쥐어서는 안 된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그 사람 약간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제가 3일밖에 안 살아 봐서 3년밖에 안 살아 봐서 어떻게 제가 다 알겠습니까. 제가 그때 느낀 점은 이런 게 조금 있었습니다.

뭐 이혼을 했다 하더라도 어떤 친구가 너 그 인간하고 한 3년 살았다매? 응. 어때? 하면 글쎄. 내가 살아본 경험으로는 나한테는 이런 게 문제로 느껴졌어. 그러나 어떻게 사람을 다 알겠어. 이렇게 얘기해 주면 될 텐데. 그 인간? 내가 살아 봤잖아, 으이그. 이렇게 얘기한단 말야.

그래서 우리는 내가 아는 것은 전모가 아니에요. 부분이지. 이거를 전체인 양 착각하고 있단 말야. 이거를 아상이라고 해. 그래서 아집이라는 거야. 이거를 옳다고 고집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아상을 버려라 아집을 버려라 그래야 전모를 알 수가 있다. 그게 지혜고 통찰력이야. 통찰력.

그래서 우리가 이런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는 거야. 어떤 사람이 술을 먹고 비틀비틀해. 어 너 취했네? 그렇지. 내가 취한 것 같아 안 그래도. 걸음걸이가 문제니. 이 사람은 집에 잘 갈까 못 갈까? 잘 가. 이 사람은 자기 취한 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어, 너 취했네? 뭐어? 소주 한 병 먹고 내가 취할 것 같아?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은 인제 사고를 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라 부족한 줄을 알고 있어야 하고. 화 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근데 우리가 내가 모른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 깜깜절벽 속에 있다 이런 얘기야. 그러니까 아 내가 그건 잘 모르겠는데 라고 하는 것은 벌써 벽에 금이 가는 거다 이런 얘기야. 그러면 저절로 겸손한 거야.

겸손하다, 겸손해야 한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 그거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이거 하고 몰라 나는 그거! 이건 모른다는 얘기야 듣기 싫다는 얘기야? 듣기 싫다는 거. 이거하고 구분하셔야 해.

이렇게 법문을 하면 두 가지 병이 있어. 무지의 병이 있어. 아, 난 몰라. 처음 왔어. 이렇게 얘기하는 거. 안 듣는 거야. 모른다는 걸 방패 삼아서 안 들을라고 하는 거. 또 한 사람은 아, 저 얘기 전에도 들었어. 그건 안다는 걸 방패 삼아서 안 들으려고 하는 거.

부부지간에도 그런 경우가 있잖아요. 남편이 뭐라 뭐라 그러고 아내가 뭐라 뭐라 그러면 알았다니까! 이러잖아. 그 알았다는 뜻이에요 듣기 싫다는 뜻이에요? 듣기 싫다는 거. 또 뭐라 뭐라 그러면 몰라 나는! 이래요. 그 모른다는 거에요 듣기 싫다는 거에요? 듣기 싫다는 거. 이 안다 병과 모른다 병에 걸린 사람은 부처님도 구제하지 못 한다 이렇게 말해요.

(일동 웃음)

중생은 다 지 근기에 따라 양식을 얻어간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제 그릇 따라 빗물을 받아가는데 이 두 종류는 빗물을 못 받아가지. 안다 병과 모른다 병에 걸린 사람은.

그 어떤 사람이냐. 바가지 거꾸로 쥐고 있는 사람. 바가지를 이렇게 거꾸로 쥐고 있으면 하루종일 서 있어도 고여요 안 고여요? 안 고여. 그 바가지 거꾸로 쥐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안다 모른다에 걸린 사람. 그건 알고 모르는 게 핵심이 아니라 듣기 싫다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다 이런 얘기야.

그래서 우리가 지금은 이런 마음의 치유를 할 때 우리는 훨씬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질 수가 있다. 우리가 이렇게 자연을 지나치게 파괴하거나, 이렇게 지나치게 소비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꼭 지위가 높아야 하거나, 지 뜻대로 세상이 돼야 하거나, 그래 하지 않고도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가 있다는 거야.

그런데서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왔습니다. 옛날에 배고플 때는 조금 밥만 먹으면 행복할 줄 알고 집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고 차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고 승진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해보니까 아, 이것만 갖고 인간이 행복해지는 게 아니구나.

그러면 우리는 이제 다른 데 눈을 돌려야 한다. 밖으로 향한 눈을 안으로 돌려서 이제는 자기 내면에 헐떡거림을 봐야 되고 이걸 치유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수행이다, 이렇게 말해요. 이거는 무슨 불교니 기독교니 중요한 게 아니다. 믿는 거는 각자 알아서 믿으면 돼요.

그러나 이 내면에 헐떡거림을 어떻게 치유할 거냐. 이걸 해야 여러분들의 삶이 좀 더 자유로워지고, 여러분들의 인간 관계 부부 관계가 좀더 지금보다는 나아지고, 여러분들이 키우는 자식이 그렇게 애 안 쓰고 키워도 그렇게 실망하지 않는다.

여러분들은 아이들이 잘 자라는데도 지나친 욕심으로 아이들을 보기 때문에 내 아이가 늘 못마땅하고. 부모로부터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부모로부터 신뢰 받지 못 하는 아이들은 자존감이 없어요.

그래서 바깥에 가서 세상 사람이 뭐라 그래도 아이에게는 엄마가 격려해줄 줄 알아야 돼고 바깥에서 어떤 일을 당해도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격려해줄 수 있을 때, 그럴 때 사람은 다시 힘을 내는 거야.

근데 바깥에서 남편이 훌륭하다고 하는데도 집에서 마누라는 어떻게 생각해요. 지가 인간인가 저 짐승보다 못한 으이그, 저놈의 첨지. 이런 거를 서로 느낄 때 얼마나 이 자존감이 없어지는지 모릅니다. 마음에 화가 나고.

그러니 여러분이 바깥에서 환영 받는 것보다도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신뢰 받는 게 훨씬 더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남편보고 믿어달라 하지 말고 내가 남편을 믿어 주고 아이를 믿어 주고 신뢰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거야.

네, 그렇게 해서 자기 인생을 좀 행복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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